hyeonsig notes

연구실에서 오후 10시쯤 계획에 없었던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연구실 구성원끼리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끔 갔었는데, 최근에는 이런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후 11시 30분에 시작되는 영화[각주:1]라서 보러 갈지 고민했습니다만, 교수님의 권유로 말미암아 관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관람하게 될 영화는 2014년 4월 30일에 개봉한 <역린>이었습니다.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는 영화였고, 필자가 역사를 좋아해서 보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500년의 조선 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조선왕조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군주인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역린>. 지금부터 이 영화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The Movie INSIDE

[제목] 역린

[평점] ★★★


[장르] 시대극

[링크] 홈페이지 | 영화정보


[감독] 이재규

[출연] 현빈, 정재영, 한지민, 조재현, 박성웅, 김성령, 정은채 외


2014-04-30 | 15세이상관람가 | 135분


시대적 배경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역린>은 조선의 22대 국왕인 정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알려진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조선의 군주로 정조를 손꼽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군주의 시대적인 배경, 특히 정치적인 배경은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납니다. 세종은 가장 강력한 왕권을 유지한 시대였지만, 정조는 엄청난 외압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있습니다. 역사적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독살을 당했다는 설도 있을 정도이니 그의 정치적 배경이 얼마나 불안정했는가를 간접적으로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린>의 배경이 되는 정유역변은 1777년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정조 임금이 1775년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1776년에 조선의 22대 국왕으로 재위했으니, 왕이 된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발생한 반역사건입니다. 경비가 삼엄한 궁궐에 침탈하여 왕을 암살하려고 하다니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기록에 남아있는 정유역변의 기록은 <역린>에서 그려진 것과 달리 너무나 조악합니다[각주:2]


빼어난 영상미와 중용 23장

영화 <역린>에 등장하는 영상은 화려하며 아름답습니다. 특정 장면에서 시선을 사로잡으며, 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린>에서 돋보이는 점은 빼어난 영상미 외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굳이 하나를 더 추가하면 <역린>의 줄거리의 중심에 있는 중용 23장입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중용 23장


부끄럽게도 <역린>을 통하여 중용 23장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제 마음속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메시지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 속이 뜨거워지네요.


디테일이 부족한 연출력

갑자기 영화를 보게 되어, <역린>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역린>을 보면서 지속해서 든 생각은 연출진이 누굴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영화 관람을 마친 후, 연출진에 대해 알아보니 <베토벤 바이러스>와 <더킹 투하츠>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과 만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최성현 작가님이 연출진의 중심이었습니다.

<역린>을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역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특정 장면에만 초점을 맞춰서인지 전체적인 극의 전개과정이 너무 부실합니다. <더킹 투하츠>를 보신 분이라면 어떤 느낌이신지 감이 오실 것 같습니다. 또한, 극의 중간에 장면과 관계없는 대사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연출진이 너무 영상미에만 치우친 나머지 극의 전개과정이 지나치게 허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상미보다 극의 전개과정이 매끄러웠다면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배우들이 사라지다.

영화 <역린>의 출연 배우에 대한 홍보 기사가 엄청나게 많습니다[각주:3]. 홍보 기사처럼 대한민국에서 인기 있는 많은 배우가 출연합니다. 하지만 유명한 배우들이 <역린>에 출연하는 것이 전부이며, 이들의 매력과 역량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재영씨와 조재현씨를 제외하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보통 영화처럼 호흡이 긴 연기를 통해 배우들은 잠재력을 발휘하여 한 단계 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각주:4]. 그런데 <역린>은 배우들이 가진 고유의 매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배우들보다는 연출진의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왜 이 보석같은 배우들이 <역린>에서 사라졌을까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짧은 상영 시간과 비교하면, 이 영화에 너무 많은 배역이 등장합니다. 심지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에 있는 핵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극본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를 보다 보면 극을 이끌어 나가는 몇몇 핵심 인물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지루함만 남다.

필자의 의견뿐만 아니라 <역린>의 관람평을 보면 지루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역린>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인데, 마치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영화를 30분 정도 보면 뒤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너무나 명확하게 그려집니다. 물론 예측 가능한 이야기로 영화가 전개되어도 전체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그렸다면 긴장감은 없더라도 지루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정유역변의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연출진의 아이디어가 시나리오에 녹아들었어야 했는데, <역린>에서는 이 부분이 너무 아쉽게 그려집니다. 조금만 더 관객이 공감할 수 있고, 설득력 있는 전개가 있었다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영화의 무게 중심에 대한 생각입니다. <역린>의 주된 이야기가 역모 사건이고, 긴박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이 영화의 도입 장면부터 지나치게 긴장감을 높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긴장감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지속되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막상 폭발해야 할 부분에서는 이미 다 타고 사라져 힘에 부치는 느낌입니다.


마치면서

정조시대와 정유역변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토대로 탄생한 <역린>은 필자에게 여러 가지로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으로 영화에 처음 도전했던 이재규 감독님과 최성현 작가님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이번 작품에서 얻은 경험과 피드백을 토대로 앞으로 더 훌륭한 작품으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1. 2014년 5월 1일 관람 [본문으로]
  2.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정조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란 설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최근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니 당연한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4. 물론 적응에 실패하여 TV에서는 성공하지만 영화에서는 실패하는 배우들도 많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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